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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團法人 大韓佛敎 僧伽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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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패

① 경전의 글귀나 게송에 곡조를 붙여 부처의 공덕을 기리는 찬가(讚歌).
② 예수재(豫修齋)·수륙재(水陸齋)·영산재(靈山齋) 등의 의식 때 부르는 노래. 안채비들이 부르는 안채비소리와 겉채비 들이 부르는 홋소리·짓소리와 화청(和淸)의 네 가지로 구성되어 있는데, 홋소리와 짓소리가 범패의 대부분을 차지함. 안채비소리는 재주(齋主)를 축원하는 염불이고, 홋소리는 비교적 짧은 노래로 구성지고 부드러움. 짓소리는 합창으로 부르는데, 무게가 있는 억센 노래이며, 화청은 포교의 한 방편으로 대중에게 친숙한 민속 음악에 우리말 사설(辭說)을 얹어 부르는 노래로 태징과 북을 반주로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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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의식과 범패

재는 산스크릿트어 ‘upoadha’를 번역한 말로 원래 일정한 날에 계율을 지키거나 신(身)ㆍ구(口)ㆍ의(意) 삼업(三業)을 깨끗하게 하여 악업을 짓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을 의미하였다. 인도에서는 제사(祭祀)를 의미하는 빨리어 ‘huta’의 번역어로도 쓰였고 정오 이전에 먹는 밥을 의미하기도 했다. 인도불교에서는 사원에서 모이는 여러 행사의 이름을 가리켰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던 것이 중국으로 들어와서는 여러 가지 의미로 중첩되어 재식(齋食) 재회(齋會) 재계(齋戒) 등의 낱말이 분화되어 사용되었다. 재식(齋食)은 정오 이전에 먹는 밥이라는 의미인 齋에다 食자를 덧붙인 것으로서 일반적으로 밥을 가리킨다. 재회(齋會)는 원래 승려나 신도들을 모아서 재식을 주는 모임을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중국불교에서는 사찰의 모든 대중적인 모임에서는 반드시 재식을 제공하였기 때문에 사찰의 대중적인 모임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사찰의 대중적인 모임을 줄여서 재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불교에서는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것도 재라고 하고 거기서 나아가 성대하게 불공을 올리는 것도 재라고 하였다. 재공(齋供)이라는 말은 그렇게 해서 나온 말이다. 재의 의미가 원래 신·구·의를 정재 하는 것과 모든 영혼을 천도하고 산사람의 정신과 육체를 밝히는 일이므로 주로 천도재의 형태로 시행되기도 한다.

재라는 모임은 그 모임에 참석하는 것 자체로 공덕을 받는다는 생각 때문에 신도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중국불교를 거치면서 각종 재가 만들어졌고, 오늘날 한국불교에도 목적과 시기에 따라 관음재, 수륙재, 영산재, 사십구재, 생전예수재, 우란분재 등 여러 가지 재의 의식이 전해지고 있다.

① 영산재 (靈山齋)

영산재는 불교의식 가운데 생전예수재(生前豫修齋)ㆍ수륙재(水陸齋)와 함께 한국의 대표적인 재의식(齋儀式)이며, 중요무형문화재 제 50호로 지정되어 있다. 영산(靈山)은 중인도 마갈타국 왕사성 부근에 있는 기사굴산(Gdhrakuta)을 가리킨다. 이 산에는 신선(靈)과 독수리(鷲)가 많이 있다고 하기도 하고, 또는 산봉우리의 모양이 독수리의 머리와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대승불교의 경전 가운데 하나인 『법화경』을 이곳에서 설하셨기 때문에, 이 법회를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고 한다. 재(齋)는 산스크리트어 Uposada에서 온 말로 스님들의 공양의식을 가리킨다. 그래서 영산재는 “시공을 초월하여] 『법화경』을 설하신 부처님과 설법을 듣기 위해 모인 영산회상의 대중을 오롯이 옮겨오는 것”이며, 여기 모인 모든 불ㆍ법ㆍ승 삼보(三寶)에 공양을 올리는 의식을 말한다. 영산재는 부처님[佛]과 『법화경』[法] 그리고 회중(會衆)[僧]에게 예배ㆍ찬탄ㆍ공양함으로써 죽은 이의 영가(靈駕: 일반적으로 영혼이라 부르는 것을 불교에서는 영가라 한다)를 포함하여 모든 중생이 진리의 바다, 즉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가도록 하는 의식이다. 즉, 삶과 죽음을 평등하게 보고, 범인(凡人)을 성인(聖人)과 평등하게 만들고자 하는 대승불교의 의식적(儀式的) 표현이며 진리를 구현하기 위한 수행도(修行道)가 영산재다.

영산재의 유래는 이설이 분분하다. 범음ㆍ범패와 같이 진감선사(眞鑑禪師: 774-850) 내지 그 이전에 기원을 두었다고 보는 경우도 있고, 일본의 원인(圓仁)이 쓴 『입당구법순례기』의 적산원강경의식(赤山院講經儀式) 소개에 언급은 되고 있으나, 오늘날 영산재의 원형인지는 알 수 없다. 또한, 영산재의 내용이 주로 성문, 연각, 보살이라는 3승의 가르침을 모아 일승이라는 진정한 열반의 길로 인도한다는 ‘회삼귀일(會三歸一)’과 부처님은 이미 오랜 겁 이전에 성불했다는 ‘구원성불(久遠成佛)’이라는 『법화경』의 사상에 근거한 점에 착안하여, 고려의 법화종의 개조(開祖) 대각국사 의천(大覺國師 義天: 1055-1101)에서 기원을 찾는 학자도 있다.

영산재(靈山齋)의 의식절차는 전통문화의 음악적ㆍ무용적ㆍ극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데, 범음ㆍ화청과 삼현육각(三絃六角: 향피리⑵·대금·해금·장구·북), 호적, 취타 등의 반주가 그 음악적 요소이며, 바라춤(바라무)ㆍ나비춤(=착복무)ㆍ법고춤(法鼓舞)는 승무ㆍ바라춤 같은 민속무용의 근원을 이루고 있으며, 의식절차는 도입ㆍ전개ㆍ절정ㆍ결말의 극적 요소를 갖고 있다.

영산재는 다음의 순서로 진행된다.
먼저 재를 올리기 전에, 도량을 결계ㆍ장엄한다. 도량의 장엄은 외적으로는 도량의 범위를 정하여 번(幡)과 개(蓋) 등 가지가지 장엄으로 장식하는 것이며, 내적인 면에서는 정법계진언(淨法界眞言)과 여타의 진언을 중심으로 도량을 깨끗이 하는 것이다.

영산재는 도입ㆍ전개ㆍ절정ㆍ결말의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도입부분은 재의 구성원을 영입 또는 초청하는 것으로서 시련ㆍ재대령ㆍ관욕ㆍ조전점안ㆍ신중작법ㆍ괘불이운이며, 전개 및 절정부분은 상단권공ㆍ식당작법ㆍ운수상단권공ㆍ중단권공ㆍ시식으로서 공양을 준비하여 소례께 올리는 것이고, 결말부분은 봉송으로서 초청 제위를 전송하는 것이다.

1) 시련(侍輦)
시련은 임금이 타는 가마(輦)를 모신다는 뜻으로서, 불ㆍ보살님과 영가들을 모셔오는 인로왕보살(引路王菩薩)을 맨 앞으로 해서 절 어구의 시련터에서 모셔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법회의 원만 성취와 금일 영가의 왕생에 크게 도움이 되어 주실 시방세계의 성현(聖賢)님과 대범 제석 사천왕 그리고 가람을 옹호하시는 팔부 신중님을 인로왕보살님의 안내로 본 재도량으로 모셔 들이는 의식이다.

2) 재대령(齋對靈)
금일 법회의 주인공인 천도하고자 하는 영가와 유주(有住)ㆍ무주(無住)의 모든 영가를 도량으로 모시는 의식으로서, 유교에서 제사에 앞서 행하는 상식(上食)과 같은 것이다. 사찰의 정문인 해탈문 밖에 단(檀)을 마련하여, 재를 올리는 연유와 금후 영가께서 나아갈 길을 불법(佛法)에 의거하여 말씀드리고, 이 때 면반(麵飯) 공양과 잔(盞)을 올려 유가족의 정성을 나타내는 의식이다.

3) 관욕(灌浴)
영가의 삼업(三業)을 청정케 해 드리는 의식으로, 청정한 마음자리에서 본다면 자신을 규정하는 모든 것은 번뇌이므로 생전의 온갖 인연을 씻고 청정한 본래 마음을 회복케 해 드리는 의식이다. 대령이 영가의 이성에 호소하여 영가 자신의 자력적 판단과 행동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자력신앙적인 동시에 철학적인 면이 강하다면, 관욕은 의식 가운데 진언(眞言: mantra)이 많이 등장함으로써 다분히 타력신앙적인 동시에 종교적인 특징이 강하다. 즉, 영가가 불법을 듣기 전에 세상을 떠나기 전 탐욕ㆍ분노ㆍ어리석음으로 더럽혀진 몸과 마음의 업(karma)을 깨끗이 씻어내는 의식이다. 이것은 영가를 천도할 수 있는 법력이 높은 스님이 맡는다.

4) 조전점안(造錢點眼)
조전은 명부(冥府:저승)에서 사용 가능한 돈을 만드는 것이며, 점안은 돈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을 말한다. 이 의식은 생전예수재(生前豫修齋)의 영향이라 여겨진다.

5) 신중작법(神衆作法)
불법을 수호하고 수지(受持: 받아 지니는 것)하는 시련에 의해 모셔진 모든 현성께 차(茶)를 올리며 축원하고, 영산재 불사가 원만히 회향되도록 도와주실 것을 부탁하는 의식이다. 재의 규모에 따라 39위 또는 104위의 신중을 모신다.

6) 괘불이운(掛佛移運)
이는 야외에서 베푸는 법요의식(야단법석: 野檀法席)에 탱화(幀畵)형태로 된 부처님을 모시는 의식이다. 의식이 야외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탱화는 규모가 매우 큰 편이다. 영산재에는 주로 『법화경』의 법화변상도(法華變相圖)를 주로 모신다. 이것은 법회의 주인공인 부처님을 위시하여 영산회상에 운집한 보살님들을 포함한 성중을 모시는 것으로서 도입부의 가장 중요한 의식이다.

7) 상단권공(上壇勸供)
영산작법(靈山作法)이라고도 하며, 바깥채비 중심으로 진행된다. 불보살께 일체대중이 지극한 정성으로 마련한 육법공양(六法供養: 향<香>ㆍ등<燈)>ㆍ꽃<花>ㆍ과일<果>ㆍ차<茶>ㆍ쌀<米>를 불ㆍ보살께 바치는 것)과 음성공양으로 불보살님의 가피력을 입을 것을 발원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거행하는 순서는 결계의식(結界儀式: 도량이 청정해지도록 작법에 의해 일정 지역을 구획하고 사람들의 출입을 제한하는 것), 소청의식(召請儀式: 불ㆍ보살님과 성중을 초청하는 것), 설법의식(說法儀式), 권공의식(勸供儀式: 정성이 담긴 공양물을 진설하고 드시기를 권유하는 것), 회향의식(回向儀式: 재를 거행한 공덕을 일체중생에게 되돌리는 것)이다. 즉, 삼보님을 청해 모시고, 영가와 재자의 이름으로 공양을 올리며 부처님의 대자대비하신 가피력으로 영가의 왕생극락이 성취되고 부처님께서 밝히신 진리의 등불이 오탁악세인 사바세계를 비추어 주실 것을 축원하는 의식이다.

8) 식당작법(食堂作法)
식당작법이란 총림의 모든 스님들이 법회시에 공양을 받고, 그 보답으로 재를 마련한 이와 육도중생(지옥ㆍ아귀ㆍ축생ㆍ하늘ㆍ인간ㆍ아수라의 세계에 사는 중생)에게 법공양을 베푸는 일련의 대규모 공양의식이다. 일상공양과는 달리 범음과 범패로 의식을 거행하며, 이때 사물(四物: 범종ㆍ법고ㆍ목어ㆍ운판)을 비롯한 각종 법구가 동원되며, 법고무ㆍ바라무ㆍ착복무(나비춤) 등의 작법무(作法舞)를 거행하는 등 그 의식규모와 절차가 매우 방대하여 불교의식의 백미로 꼽히고 있다.

내용에 있어서는 공(空)사상을 근저에 둔 반야심경(般若心經)의 전문이 이용되면서 삼륜청정(三輪淸淨)을 강조하고, 계ㆍ정ㆍ혜(戒定慧) 삼학을 따를 것을 서원하는 등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의 보살도 실천에 대한 발원이 들어 있다. 즉, 반야(般若)의 제법개공(諸法皆空) 도리를 바탕으로 견도위(見道位)에 들어 법화(法華)의 제법실상(諸法實相) 도리를 깨닫고 급기야 교법 수행의 단계를 초월해서 정각(正覺)에 이름을 나타내는 드라마틱한 의식이기도 하다.

9) 중단권공(中壇勸供)
대웅전을 기준으로, 상단을 바라보았을 때 오른 쪽에 자리한 신중단(神衆壇)을 향해 거행한다. 화엄회상(華嚴會上)의 39위 화엄성중 내지 104위의 옹호성중을 소례(所禮)로 공양을 올린다. 또는, 중단 지장보살 증명으로 각존자(各尊者)와 십대명왕(十大冥王) 등 각 대왕과 각종 권속을 청해 권공하는 절차라고도 한다. 목적은 불법과 도량의 옹호 및 이 재의식의 원만한 회향, 그리고 재를 올리는 이의 수행(修行)과 안녕을 기원하는 것이다.

10) 시식(施食)
관음보살의 원력으로 영가단(靈駕壇)에 공양을 베푸는 의식이다. 상단과 중단권공에 이어, 밖에 마련된 하단(감로단 또는 영단)을 향해 재를 올리는 사람을 복위로 한 망자(亡者)와 대령재에서 모셔온 일체 유주무주 영가들을 위하여 부처님이나 조사들의 가르침과 음식(法食) 그리고 다라니(眞言)를 설해 천도해주는 의식이다. 시식에는 전시식(奠施食), 구병시식(救病施食), 화엄시식(華嚴施食) 등이 있지만, 영산재에서 주로 관음시식(觀音施食)을 거행하는 이유는 한국불교의 신앙형태 가운데 관음신앙이 가장 대표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살아서도 관세음보살, 생전에서와 같이 사후에도 관세음보살”이 영가로 하여금 성불로 이끄는 인도자인 것이다. 이 부분은 불법(佛法)을 만남이 다행이려니와 스님의 법력과 재자의 정성스러움으로 영가께서 왕생극락하게 되신 바, 이별에 따른 슬픔 대신 자축의 의미를 담아 영가께 공양을 올리는 의식인 것이다.

11) 봉송(奉送)
봉송은 재의식의 결말부분으로서 도량에 봉청해 모신 불ㆍ보살ㆍ호법성중ㆍ재에 초대된 영가 등을 차례로 전송하는 회향의식이다. 회향이란 회전취향(回轉趣向)을 줄인 말로, 자신이 닦은 선근공덕(善根功德. white energy)을 자신의 성불이나 국가의 안녕 내지는 우주 법계의 중생들을 위해 되돌리는 것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소대의식(燒臺儀式)에서는 재를 지낸 도량장엄을 위해 마련한 각종 장엄물과 영가를 위해 준비한 금은전(金銀錢) 및 옷 등을 소대(태우는 곳)에서‘하늘의 입’이라 여기는 신성한 불(火, Agni)에 넣어 사룬다. 오늘 법회의 공덕을 지금까지 정성껏 받들어 모신 법회의 공덕으로 영가께선 아미타불께서 계신 서방 극락세계로 왕생케 되신 바 길 떠나시는 영가를 전송하는 의식이다.

사람이 죽으면 7일마다 명부(冥府 : 지옥)의 십왕(十王) 앞에서 심판을 받고 마지막 49일째 되는 날 그 사람이 가게 되는 다음 세상이 최종적으로 결정된다는 관념이 불교에는 전통적으로 내려오고 있다. 그 관념에 따라 사람이 죽은 다음 매 7일마다 7·7일 즉 49일째 되는 날까지 그 사람이 생전의 업장을 소멸하고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도록 기원하는 재를 올리는데 이것이 사십구재이다. 이는 영가가 좋은 곳으로 가기를 바라는 천도재의 일종이다. 현재 무형문화재 제 50호로 지정된 영산재도 상주권공재, 시왕각배재와 아울러 대표적인 천도재이다.

② 생전예수재(生前豫修齋)

생전예수재는 윤달이 드는 해에 하는 불사의 하나로서,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에 미리 수행과 공덕을 닦아두는 의미의 재의식으로서 역수(逆修)라고도 한다. 윤달에 예수재를 거행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윤달을 공(空)달 혹은 군달이라 하여 한 달이 더 있는 윤달을 택해 시간에 대한 부담을 덜고, 평소 뜻을 함께 하는 인연불자들의 정성을 결집하여 경제적 부담을 줄이고자 윤달을 택했던 것이니, 윤달을 불사에 활용함은 지혜의 소산이라 하겠다. 여타의 재의식이 대부분 죽은 자를 구제하는 천도재인 반면 이는 자신을 생전에 구제하는 재의식이다. 당나라 때 현장법사가 인도에서 십이생상속(十二生相屬)에 관한 것을 들여왔는데, 이것이 기원이 되어 당나라와 우리나라의 전통의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는 설이 있는데, 의식의 차례는 다음과 같다. 금·은·전을 만들고 각 단(壇)을 만들어 장엄하게 꾸민 다음 신중작법(神衆作法) 주향공양(呪香供養) 소청(召請) 등 범패와 바라춤 나비춤 등이 진행되며, 봉송(奉送)으로 이어진 다음 마치게 된다.

예수재의 기원은 『지장경(地藏經)』의 「이익존망품(利益尊亡品)」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거기에서 지장보살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만약 어떤 남자나 여인이 살아서 착한 일을 하지 않고 많은 죄를 짓고서 죽게 되면, 그의 가깝고 먼 친척들이 훌륭한 공덕을 지어 복되게 하더라도 7분의 1만 죽은 사람이 얻게 되고 나머지 공덕은 산 사람에게 돌아간다. 그러므로 현재와 미래의 선남자 선 여인이 잘 듣고 스스로 닦으면 그 공덕의 전부를 얻을 수 있다”
따라서 망자를 위해 아무리 정성을 다한대 해도 망자는 그 공덕의 7분의 1밖에 얻지 못하므로 살아 있을 때 미리 재를 지낼 필요가 생겼고, 이것이 바로 생전예수재(生前豫修齋)로 발전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 이후 시행되어 왔는데 의식의 주요 대상은 천도재의 경우처럼 명부의 시왕(十王)이다. 모든 인간은 인간의 죄과를 심판하는 이들에게 빚이 있는데 크게 경전빚과 돈빚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를 갚는 방법이 예수재 의식인 것이다. 즉 경전 빚은 경전을 많이 읽어서 갚고 돈 빚은 많은 사람들에게 보시함으로써 갚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예수재의식은 진리에 대한 무지와 이기적인 삶에서 벗어나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게 하는 한편, 타인에게 이익과 안락을 줄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부처님 가르침의 구체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재는 생전예수재(生前豫修齋) 혹은 예수시왕생칠제(豫修十王生七齋)라고도 부르고 영산재와 더불어 행해지기도 한다.

수생전(壽生錢)과 수생경(壽生經)
의식 진행 면에서 볼 때, 예수재 역시 재의식인 만큼 소례이신 삼보님과 지장보살님을 위시해 다소 많기는 하지만 명부의 259위께 공양을 올린다는 점은 여타의 재의식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그런데 준비물 가운데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이 있으니 「예수천왕통의(預修薦王通儀)」의 내용 가운데 보이는 ‘수생전(壽生錢)’이다. 수생전이란 남염부제(南閻浮提)의 중생들이 ‘십이생상속(十二生相屬)’이라 하여 이 세상에 태어날 때 그 해의 간지(干支)에 따라 그 해에 태어나는 중생을 책임진 명부의 관리로부터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만큼 빌린 돈을 말하는 것이라 한다. 즉, 우리의 삶 자체가 빚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예수재」는 그 빚을 이승에서 미리 갚으려는 목적으로 거행하는 의식이며, 그 공덕 또한 지대해서 18가지 횡재(橫災)를 예방할 수 있고 삼세(三世)의 부귀와 길상(吉祥)을 보장받게 된다고 한다.

일견 미신스럽기까지 한 이런 사상이 생명력을 지니고 거행되고 있음은 왜일까. 이는 무상(無常)과 무아(無我)의 이치를 모른 채 자칫 자만하거나 작은 선행에도 상(相)을 나타내기 쉬운 중생심(衆生心)을 경계하고, 『금강경(金剛經)』의 말씀과 같이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낸다(應無所住 而生其心)’는 자세로 명실공히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를 행하게 하여 성불로 이끌게 하는 훌륭한 방편이기 때문이다. 빚은 당연히 갚아야 하는 것으로 그것을 갚는다는 마음에는 대가를 기대하는 마음이 없겠고, 뿐만 아니라 행복의 극치인 성불을 추구하는 불자라면 응당 타인의 성불을 위해서도 무주상의 자세로 노력하지 않으면 안됨을 적극적으로 의식화(儀式化)한 것이라 하겠다.
한편, 빚을 갚는데 필요한 물건(物件)으로 『금강경』이 한 가지 더 있다. 여기서는 앞서 언급한 ‘수생전’과 같은 맥락에서 이를 ‘수생경(壽生經)’으로 부르기로 한다. 수생전이 물질적 은혜에 대한 갚음이라면, 수생경은 정신적인 면에서의 보은인 셈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수생전과 수생경은 ‘갚음’이라는 점에서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③ 수륙재(水陸齋)

물과 육지에서 헤매는 외로운 영혼과 아귀를 달래고 위로하기 위하여 불법(佛法)을 강설하고 음식을 베푸는 불교의식으로서 수륙무차평등재의(水陸無遮平等齋儀), 국행수륙대재(國行水陸大齋), 수륙회(水陸會), 비제회(悲濟會) 등의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수륙재는 중국 양(梁)나라의 무제(武帝)가 유주무주(有住無住)의 고혼(孤魂)들을 널리 구제하는 일이 제일가는 공덕이라 생각하고서 스님들과 상의한 후 스스로 의식문(儀式文)을 만든 데서 출발했다고 한다. 양무제의 의식문에 따라 서기 505년에 금산사(金山寺)에서 재를 베푼 것이 그 시초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수륙재가 설행된 것은 고려 때부터이다. 광종 때에 가끔 성대히 열린 바 있었는데 970년(광종 21)에 갈양사(葛陽寺)에서 개설된 수륙도량이 그 최초라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비록 억불정책에 의하여 유교의식으로 많이 바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태조(太祖)는 진관사(津寬寺)를 국행수륙재(國行水陸齋)를 여는 사사(寺社)로 지정하여 크게 재의를 행하였다. 뿐만 아니라 1395년(태조 4)에는 견암사(見巖寺)와 석왕사(釋王寺), 관음굴(觀音窟)등에서 고려조 왕씨(王氏)의 영혼을 달래는 수륙재를 베푼 적이 있다. 그 이후 배불정책에 따른 불교의식의 유교화 정책은 수륙재를 국행으로 거행하는 문제를 놓고 많은 논란을 벌이게 되나 오랜 전통으로 계속되어온 수륙재를 쉽게 폐지시키지는 못하였다. 억불정책으로 이름이 높던 태종(太宗)도 국행수륙재 폐지의 상소문을 받고 대대로 거행하여온 유풍을 쉽게 폐해서는 안 된다고 하여 국행을 고집하였다.
수륙재는 처음 매년 2월 15일에 거행되었으나 1415년(태종 15)부터는 1월 15일로 변경하여 실시하여 대체로 1515년(중종 10)경까지 계속되었다. 왕실의 여러 궁에서 직접 시주자가 되어 때때로 수륙재가 열림에 따라 유생들의 시비와 비난을 받았으나, 1433년(세종 15)에 효령대군이 시주자가 되어 한강에서 열었던 수륙재나 1606년(선조 39) 6월 창의문 밖에서 열었던 수륙재는 양반과 평민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어 길을 메울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러나 중종 때에 유생들의 강력한 반대에 의해 수륙재가 국행으로 설행됨이 금지된 이후 민간에서만 전승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④ 우란분재(盂蘭盆齋)

지옥중생과 아귀(餓鬼)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베푸는 재를 우란분재 또는 우란분회라고 한다. 석가모니의 수제자였던 목련존자(目連尊者)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지옥에 떨어져 고통 받고 있음을 알고서 부처님께 구제방법을 물었는데 부처님께서는 스님들의 안거(安居)가 끝나는 날인 7월 15일에 지극한 정성으로 어머니의 제도를 기원하면서 스님들께 공양을 베풀면 된다고 가르쳐 주셨고, 목련존자가 이를 그대로 행하자 그의 어머니는 결국 천상계로 태어나게 되어 복락을 누리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로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목련존자의 설화는 효도사상과 결합하여 끊임없이 확대 유포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이후 우란분재를 성대하게 거행하였다. 다만 조선조 이후 억불정책에 의해 국가 차원의 행사는 폐지된 반면 민속명절인 백종(百種)과 결합하여 일반 민중 사이에서는 오늘날까지도 꾸준히 전승되고 있다.

⑤ 범패(梵唄)

범패란 불가에서 재(齋)를 지낼 때 사용하는 의식용 음악으로서 범음범패(梵音梵唄)의 대표 격으로 쓰이는 말이다. 범음은 부처님의 서른두 가지 특징 가운데 하나인 부처님의 음성, 곧 부처님의 가르침을 뜻한다. 범패는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는 노래로서, 내용상 부처님의 가르침과 역대 조사(祖師), 고승들의 말씀에 곡을 붙인 것으로 구분된다. 범패는 어산(魚山) 또는 인도(引導)소리라고도 불린다. 범패는 단순한 불교음악을 넘어 불교 수행의 일환으로 거행한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는데, 이는 세속의 가무(歌舞)와 달리 복잡한 외부의 인연을 끊게 하고 마음을 가라앉히는 공능이 있어, 범패를 하는 이와 듣는 이가 함께 성불할 수 있도록 돕는 수행도인 것이다.

범패의 기원은 『화엄경(華嚴經)』이나 『대장엄경(大莊嚴經)』등에 부처님이 정각을 이루는 장면에서 시방의 불ㆍ보살은 물론 삼천대천세계의 천자와 선신들이 붓다가야의 보리도량에 운집하여 성불을 찬탄한 데서 비롯되었을 가능성도 지적되고 있다. 또한, 인도 바라문교(Brahmanism)의 문법학의 일종인 ‘성명(聲明, sabda-vidya)’에서 비롯된 음악에 연원을 두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범패와 작법을 ‘어산(魚山)’이라 하고 범패의 대가인 장부(丈夫)를 어장(魚丈)이라 한다. 이는 중국 위무제(魏武帝 즉 曹操 : 155-220)의 넷째 아들 조식(曹植 : 192-232)이 산동성 연주부 동아현 서쪽에 있는 어산(魚山)에 올라 고요히 앉아 있을 때, 하늘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 소리는 세상의 소리와 달리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에 그는 그 소리와 연못에서 노는 물고기의 모양을 본떠 『태자서응본기경(太子瑞應本紀經)』에 기초하여 ‘태자송(太子頌)’등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범패의 시원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 범패의 기원은, 진감국사대공탑비문(眞鑑國師大空塔碑文)에 의하면 신라 헌덕왕 때의 진감국사(眞鑑國師 慧昭: 774-850)가 804년 구법차 세공사(歲貢使)를 따라 당(唐)나라에 건너가 창주 신감(滄洲 神龕)의 법을 잇고 수행하다 범패를 배우고 830년에 귀국하여, 옥천사(玉泉寺, 현재 하동 쌍계사)에서 여러 제자에게 범패를 가르친 데 있다고 전한다. 그러나 『삼국유사』월명사도솔가(月明師兜率歌) 조에 의하면 월명사가 “향가만 알 뿐 성범(聲梵) 즉 범패는 알지 못한다”는 구절로 미루어 진감국사 이전에 이미 범패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범패는 우리나라 불교의 의식음악으로서 가곡(歌曲), 판소리와 함께 우리나라 3대성악의하나다. 그 특징은 장단과 화성이 없는 단성선율(單聲旋律)로서 우리의 정악, 즉 궁중제례악을 제외한 아악(雅樂)에 큰 영향을 끼쳤다. 범패에는 공인된 악보가 없어, 입에서 입으로 전하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고(口傳心授) 있는 실정이다. 강렬하고 반복적인 리듬에 맞춰 가사를 곡조 없이 읊듯이 노래하는 랩음악(rap music)과는 달리, 범패는 그 리듬이 길게 끌어가며 굴곡을 이루고(長引屈曲) 깊고 그윽하며 맑고 부드럽다(幽玄淸和). 그래서 연꽃이 흙탕물 속에서 피어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맑은 물에 씻겨도 요염하지 않듯, 세간의 소리이자 율동이면서도 속되지 않고 성스러운 품위와 아름다움이 범패에 있다.

안채비와 바깥채비

범패는 안채비와 바깥채비로 이루어진다. 불교에서는 흔히 진리를 둘로 나누어 본다. 진제(眞諦)는 불변의 진리와 절대평등의 본체를 가리키며, 속제(俗諦)는 차별의 원리와 만유차별의 현상계를 나타내는데, 이는 이(理)와 사(事)로 표현하기도 한다. 안채비는 이적 차원에서 불교의 진리를 가사로 하며, 바깥채비는 불교의 사적(事的=情的) 측면에서 찬탄을 주 내용으로 하며, 각기 긴장(緊張)과 이완(弛緩)을 방편(方便)으로 의식의 목적인 성불의 세계로 이끌어 간다.

안채비

안채비는 주로 ‘착어(着語)’에서와 같이 많은 어구를 이용하여 반복ㆍ부연ㆍ수식ㆍ설명함으로써 전하려는 불교의 내용을 한정된 시간 안에 많이 전달하고자 하기 때문에 소리의 길이가 매우 짧고 굴곡이 심하지 않다. 안채비의식은 주로 의식을 주관하는 절의 학덕이 높은 스님이 거행한다. 내용은 주로 한문으로 된 산문(散文)의 형태이다.

안채비의 소리는 발성법에 따라 유치성(由致聲)ㆍ착어성(着語聲)ㆍ편게성(編偈聲, 片偈聲)ㆍ게탁성(偈鐸聲)이라는 4가지(범패의 4성)로 나누어진다. 유치성의 특징은 직촉(直促)이라 하여 한 자를 발음하고 다음 자로 넘어갈 때 호흡을 멈추지 않고 이어나가는 것이며, 착어성의 특징은 여거(勵擧)로서 소리에 무게를 실어 듣는 이로 하여금 장중함과 엄숙함을 느끼게 하는 발성법이다. 편게성의 특징은 소리가 일정한 법칙에 의해 매우 조직적으로 운용되는 것으로서 ‘고자(高字)’에서 소리의 끝을 드는 듯이 처리하는 것이며, 게탁성의 특징은 시간을 단축할 필요가 있을 때, 특별히 강조할 부분 외에는 글을 읽듯 일정한 박자로 충충 읽어내려 가는 것이다.

바깥채비

바깥채비는 홑소리와 짓소리로 구분된다.
홑소리는 대체로 안채비를 거행하기 위한 준비, 혹은 거행 후에 그 내용을 압축ㆍ정리한 것으로 절구(絶句)인 한시가 대부분이며, 거행되는 시간은 짓소리에 비해 짧게 독창을 위주로 진행되므로 홑소리 또는 단성이라고 한다. 홑소리는 용상방에서 범패(梵唄)가 주관한다.

짓소리(겹성)는 주로 부처님의 사리나 괘불을 다른 장소로 옮기는 이운의식(移運儀式)이나 공양의식인 식당작법(食堂作法)에서 소례(所禮)의 명호를 가사로 하여 소례의 가호 가운데 이운이나 배식 등이 원만히 이루어지기를 기원할 때 거행한다. 그래서 소요시간이 길며, 대중 모두의 제창으로 거행되고, 홑소리와 구분하여 패(牌=무리)를 지어 소리한다는 의미에서 ‘짓소리’ 또는 ‘겹성’이라 부르며, 재시용상방 가운데 범음(梵音)이 주관한다.

축원(祝願)과 화청(和請)

축원은 불ㆍ보살님 등 예를 받는 분들(所禮)에게 예를 올리는 사람(能禮)이나 시주(施主) 혹은 재를 올리는 절의 소원을 아뢰고 아뢴 내용을 이룰 수 있도록 비는 일을 가리킨다. 재를 올리는 이유가 분명히 드러나는 곳이 바로 축원이다.

축원은 불교를 기복불교(祈福佛敎)라고 하여 마치 이러한 신앙행위를 반성 내지 배척해야 할 것으로 오해하게 만든 면도 있지만, 사바(裟婆)가 곧 정토(淨土) 번뇌가 보리(菩提)이며 열반임을 주장하는 대승불교의 안목에서 보면 이러한 기복적인 면이 곧 참된 신앙의 출발점이며 원초적 형태라 할 수 있다.

화청(和請)

화청은 ‘고루 청한다’는 뜻이며, 그 대상은 불ㆍ보살로부터 일체 중생에 이른다. 목적은 성인들과 속인들이 함께하는 자리를 마련하여 불국정토를 완성하려는 것이다. 그 방편으로 삼보를 증명(證明)으로 모신 가운데 인도(引導) 한 분이 대중과 친숙한 민속적 음조로 교리에 관한 쉬운 사설을 얹어 부른다. 반주악기로는 인도(引導)의 태징과 장단을 맞추는 말번(바라지)의 북이 전부다. 소리는 서도소리조(調)로 엇모리장단에 맞추어 행한다.

한국불교가 주로 중국을 경유해 들어와 대부분의 경전과 책이 한문으로 기록된 것이어서, 불교의 대중화에 걸림돌이 되었으나, 화청은 불법을 어려운 한문이 아닌 우리말에 우리의 가락을 붙여 대승불교의 본면목을 살리는 불교대중화를 위한 우리의 불교의식이다.

현존하는 화청가사의 종류는 37가지가 있다. 그 목적은 현실에 집착하고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중생심을 가진 이들에게 제행무상ㆍ일체개고ㆍ제법무아의 이치와 동체대비심(同體大悲心)을 깨우쳐서, 죽은 자에게는 극락왕생을 산 자에게는 지혜로써 열반적정을 이루도록 하려는 의식이다. 그래서 화청을 ‘회심곡(回心曲)’이라고도 일컫는다.

한국민속예술사전 : 음악

한국의 불교 전래에 대해서는 『삼국유사三國遺事』, 『가락국기駕洛國記』에 소개된 가야 불교의 해상 전래설과 삼국시대에 육로를 통한 중국 불교의 전래설 등 두 가지가 있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의하면 “인도의 아유타국 공주인 16세의 허황옥이 하늘이 내린 가락국 왕을 찾아 배필이 되라는 부모의 분부를 받들고 파사석탑을 배에 싣고 동쪽으로 바다를 지나 48년 7월 27일에 20여 명의 수행원과 함께 붉은 돛을 단 큰 배를 타고 장장 2만 5천 리의 긴 항해 끝에 한반도 남애南涯의 별포 나룻목에 이른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허황옥의 오빠인 장유 화상의 불교 전래설도 함께 전해지는데, 장유 화상(보옥 선사)은 후에 가락국의 국사가 되어 가락국에 불교의 기초를 놓았다. 김해 불모산 장유사에 장유 화상의 화장터와 사리탑 및 기적비가 남아 있으며, 그리고 왕과 왕후가 만난 곳인 명월사에는 선사의 초전 활동을 말해 주는 유물과 기록이 남아 있다. 또한 장유 화상은 허황옥의 일곱 아들을 성불케 해서 지리산에 칠불사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만약 『삼국유사』, 『가락국기』의 기록이 사실이라면 한국 불교의 전래 시기는 육로보다 19년 더 빠르다. 그러나 육로 전래에 비해 근거가 미약하므로 한국의 불교 전래는 육로 전래에 근거를 두고 있다. 육로를 통한 중국 불교의 전래는 고구려는 372년(소수림왕 2)에, 백제는 384년, 신라는 417년에 이루어진다. 불교가 전래됨에 따라 불교 의식인 범패도 함께 전승되었으리라 짐작하고 있다.

범패에 관련된 최초의 기록으로는 원효 대사가 671년에 저술한 『판비량론判比量論』의 필사본(740)에서 각필 악보가 발견되었고, 『화엄경사경조성기華嚴經寫經造成記』에서는 “754년 8월 1일에 한 법사가 범패를 불러 이끌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삼국유사』 「도솔가兜率歌」에서는 월명사가 “신승은 국선의 무리에 속하여 단지 향가만을 알 뿐 범성은 익히 알지 못합니다.”라고 하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를 통해 적어도 740년 이전에 통일신라에서 범패가 불렸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통일신라의 선승인 혜소 진감 선사가 803년에 당나라 유학을 가서 배워 온 범패를 830년에 귀국하여 가르쳤다는 내용이 현재 하동 쌍계사에 있는 국보 제47호 진감선사대공탑비문(887)에 최치원의 글씨로 새겨져 있다. 비문에 의하면 “(진감 선사는) 평소 범패를 잘하였는데, 그 소리가 금옥 같았다. 구슬픈 듯한 곡조에서 나는 소리는 상쾌하면서도 구슬퍼 능히 천상의 사람들도 기쁘게 할 수 있었다. 멀고 먼 곳까지 전해져서 배우는 자가 승당에 가득 찼으니 가르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지금 신라에서 어산의 묘음妙音을 익히려는 자가 다투어 코를 막고 배우듯이 옥천에 남아 있는 범음을 본받으려 하니, 어찌 소리를 들려주는 것이 중생을 제도하는 교화가 아니겠는가.”라고 기록되어 있다. 즉, 한국의 불교 의식음악인 범패가 경상도의 쌍계사에서 비롯되어 전국적으로 파생된 것임을 밝히고 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범패는 유교의 정치 이념으로 인해 쇠퇴되었지만, 그럼에도 『진언권공眞言勸供』(1496)·『영산대회작법절차靈山大會作法節次』(1634)·『오종범음집五種梵音集』(1661)·『제반문諸般文』(1694)·『산보범음집刪補梵音集』(1713)·『천지명양수륙재의범음산보집天地冥陽水陸齋儀梵音刪補集』(1739)·백파 선사의 『작법구감』(1729) 등의 불교 의식집이 저술되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인 1911년 6월에 사찰령과 본말사법이 제정되면서 범패와 작법이 금지되었고 이로 인해 의식의 일부분이 간소화되었다. 1931년에는 승려 안진호가 의식을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한자와 한글을 각각 상하로 나눈 『석문의범』(1931)을 펴냈는데, 이는 현행까지도 불교 의식을 하는 승려들의 필독서로 사용되고 있다. 현재 한국의 불교 의식은 지역별로 무형문화재로 지정이 되면서 경제·영제·충청제·완제·제주제 등으로도 세분되어 전승된다. 특히 2009년에는 한국의 불교 의식인 ‘영산재靈山齋’가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범패는 단순히 종교음악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을 대표하는 민속음악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불교 의식을 진행할 때 쓰이는 의식음악인 범패는 범음梵音의 가패歌唄라는 뜻인데, 이때 패唄는 패닉唄匿의 약어로 찬탄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또한 범패는 성명聲明·찬패讚唄·경패經唄라고도 하는데, 이는 각종 경문이나 게송을 노래하여 불덕을 찬탄하는 것을 말한다. 이 외에도 범패는 범음法音, 인도印度(引導)소리, 또는 어산魚山이라고도 한다.
범패에는 안채비들이 부르는 안채비소리와 겉채비 (또는 바깥채비)가 부르는 홋소리와 짓소리가 있는데, 안채비는 순수 불교적 의식 절차로 주로 병법 또는 법주가 유치由致·청사請詞 같은 축원문을 요령을 흔들며 낭송하는 것으로, 흔히 염불이라고 한다. 주로 유치성由致聲·착어성着語聲·편게성偏偈聲·개탁성開鐸聲 등이 대표된다. 바깥채비는 불교 의식을 전문적으로 소리하는 승려들에 의해 불리는데, 단창單唱 또는 독창으로 부르는 홑소리와 어장魚丈의 인도에 따라 재창再唱하는 짓소리로 나뉜다. 홑소리의 사설은 7언4구 또는 5언4구의 한문으로 된 산문 또는 범어로 된 진언으로 구성된다.
짓소리는 ‘나무대성인로왕보살’과 같은 9자인 짧은 사설인 경우에도 짧게는 5~15분, 길게는 30분~1시간 가까이 연주되는 매우 어려운 소리로, 범패의 최고승을 지칭하는 어장을 중심으로 대중창으로 부른다. 짓소리는 경제범패에서 73곡이 전승되었다는 증언이 있으나, 박운월 소장 판본 『동음집』, 김운공 소장 판본 『동음집』·『옥천유교동음집』 장벽응 소장 판본 『동음집』등의 네 가지 『동음집』을 통해 68곡의 짓소리와 가사가 전한다. 이 가운데 영산재 진행 과정에서 사용되는 짓소리는 53곡이며, 현재는 인성, 거령산, 관욕게, 목욕진언, 단정례, 보례, 식영산, 두갑, 오관게, 영산지심, 특사가지, 거불, 삼남태, 삼마하, 불상점안시 옴 아훔 등 현재 15곡만이 전승된다. 이 외에도 일부만 짓소리로 불리는 반짓소리가 3곡이 더 있다. 불교 의례의 절차는 재의 규모에 따라 상주권공재常住勸公齋, 시왕각배재十王各拜齋, 생전예수재生前豫修齋, 수륙재水陸齋, 영산재로 나뉜다. 이외에 축원과 화청은 가사를 한글로 풀이하여 대중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불교의 재 의식에서는 범패의 선율과 악기 반주에 맞추어 춤을 추는데, 이를 작법무作法舞라고 한다. 육수장삼과 육수가사를 입고 추는 작법무는 그 종류가 크게 네 가지로 나비무, 바라무, 법고무, 타주무 등이 있다. 작법무 중 나비무와 바라무는 지역을 막론하고 추는 대표적인 불교 무용에 해당되며, 법고무와 타주무는 경제범패의 식당작법 시에만 이루어진다.

특징 및 의의

범패는 가곡, 판소리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성악곡 중 하나로 불교의 재 의식에서 재를 올릴 때 쓰이는 의식음악이다. 일정한 장단과 화성이 없는 단선율單旋律이며, 악보가 없이 구전口傳으로 전승되어 왔다. 범패는 상주권공재, 시왕각배재, 생전예수재, 수륙재, 영산재 등의 큰 재에서 사용되며 염불이라 불리는 안채비소리와 바깥채비소리인 홑소리와 짓소리, 그리고 한글로 풀이하여 대중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화청과 회심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범패승은 가장 기본 소리라 할 수 있는 상주권공재의 소리부터 배우는 것이 일반적이고, 이후 시왕각배재, 영산재, 수륙재, 예수재 등으로 이어진다.
범패는 경제와 영제, 충청제·완제·제주제 등으로 지역별로 세분된다. 이 중 충청제, 완제, 제주제는 경제의 영향으로 인해 음악적으로 서로 유사한 면을 보이는 반면, 영제는 경제와 음악적으로 구별되는 특징이 있다. 선율은 대부분 ‘미·솔·라·도·레’의 5음으로 이루어져 있고 ‘라↘솔↘미’로 하행되는 메나리토리가 근간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경제의 경우 메나리토리의 근간 속에 서도민요의 특징인 수심가토리의 경향이 고제에서 드러나는 특징이 있으며, 반음 사용이 자주 이루어져서 매우 세련된 선율의 특징을 지닌다. 영제에서도 대부분 메나리토리가 근간을 이루지만, 창원 지역의<아랫녁수륙재>의 경우에는 육자배기토리의 특징이 메나리토리 속에 결합되는 특징이 드러나서 지역성을 보인다. 반음 사용은 경제에 비해 적은 편이며, 메나리토리의 대표 선율인 ‘라↘솔↘미’를 ‘라↘솔#↘미’ 또는 ‘라↘솔(퇴성)↘미’ 등으로 변화를 주어 단조로움을 피하는 특징이 있다.
범패의 반주에 사용되는 악기는 광쇠, 태징, 법고, 바라, 요령, 목탁 등 주로 타악기이다. 다만 일정한 장단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요령과 경쇠는 박자감을 주기 위해 연주하고, 시작과 종지, 단락감을 줄 때는 주로 태징이나 광쇠로 연주한다. 영제범패에서는 태징 대신 광쇠가 주 반주를 담당하고, 경제를 비롯한 타 지역에서는 광쇠를 사용하지 않고 태징이 주 반주를 담당한다. 유일한 선율악기로 태평소가 사용되기도 하지만, 범패 선율과는 무관한 민속 가락을 연주한다. 이를 통해 민속음악이 불교 의식음악에도 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 있다.
현재 경제범패를 대표하는 국가지정무형문화재 제50호 ‘영산재’는 2009년에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어 한국 범패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특히 ‘영산재’는 범패와 불교 의식의 콘텐츠화를 통해 세계 각국에서 공연되면서 종교적 측면뿐 아니라 한국 문화까지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